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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공부
한시 해설 · 1장 · 2026-10-21 갱신

한시와 근체시

한시라는 말의 범위와 동아시아 한문학 전통을 살피고, 고체시·근체시의 형식 구분 및 시·사·곡의 역사적 갈래를 정리한다.

한시라는 말과 문학의 범위

한문이라는 문어와 작가의 국적

오늘날 ‘한시(漢詩, 한문으로 지은 전통 시가)’라는 말은 두 가지 층위에서 쓰인다. 넓게는 중국의 고전 시가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한문(漢文, 고전 중국어에 바탕을 둔 문어)을 시적 언어로 삼아 창작한 시 문학 전반을 가리키고, 한국문학사 안에서는 우리 선인들이 한자로 지어 남긴 시를 국문 시가(향가·고려속요·시조·가사 등)와 구별하여 부르는 범주로 쓰인다 [S02, S03]. 따라서 한시를 단지 중국 국적 시인의 작품이나 외국 문학의 일부로만 좁혀 이해하면, 삼국시대부터 개항기 이후까지 천수백 년 동안 한국 지식인과 문인들이 자신의 사유와 감정을 기록해 온 방대한 문학 유산을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S02, S03].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한문은 특정 국가의 구어(口語, 입말)에 머물지 않고, 경전과 역사서, 외교 문서와 시문을 아우르는 보편적 문어(文語, 글말) 역할을 수행했다 [S03]. 한국의 문인들은 중국 고전시의 어휘와 시형(詩形, 시의 외형적 틀)을 깊이 학습하면서도, 그 형식 안에 한반도의 산천과 계절, 도성과 향촌의 풍속, 전란의 아픔과 당대 제도의 모순을 담아냈다 [S02, S03]. 시의 그릇이 한문이고 오언(五言, 한 구 다섯 글자)이나 칠언(七言, 한 구 일곱 글자)의 규범을 공유한다고 해서 작품에 담긴 경험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한시라는 말은 시인의 국적 하나만으로 경계를 긋는 이름이 아니라, 한문이라는 문어와 고전 시학의 전통 위에서 펼쳐진 동아시아 공동의 시 양식이자 각 지역 문학사의 고유한 축을 함께 가리킨다 [S02, S03].

정성과 경물의 만남, 고전 시학의 출발

동아시아 고전 시학은 시(詩)가 무엇이며 어디에서 태어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한대(漢代) 경학(經學, 유교 경전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학문) 전통 속에서 『시경(詩經)』의 해석 지침이 된 「모시서(毛詩序, 『시경』 모씨 전승본에 붙은 서문으로 저자 귀속에는 여러 설이 전한다)」는 시의 발생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S103].

詩者,志之所之也。在心為志,發言為詩。 — 「毛詩序」 [S103]

시는 마음속에 품은 뜻(志, 지향과 생각)이 밖으로 나아간 결과물이며, 마음 안에 머물러 있을 때는 뜻이라 부르고 말로 발화되었을 때 시가 된다는 뜻이다 [S103]. 이 정의는 후대 시론에서 시를 단순한 말재주나 기교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시대의식을 담는 그릇으로 보는 근거가 되었다. 이어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문학이론가 유협(劉勰)은 체계적 문학비평서인 『문심조룡(文心雕龍)』 「명시(明詩)」 편에서 시의 어원과 기능을 사람의 본성 및 감정과 결부하여 풀이했다 [S13].

詩者,持也,持人情性。 — 劉勰, 『文心雕龍』 「明詩」 [S13]

여기서 ‘지(持, 붙잡아 지킴)’는 시가 사람의 정성(情性, 타고난 본성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붙들어 어그러지지 않게 갈무리한다는 뜻이다 [S13]. 같은 시기 양나라의 시론가 종영(鍾嶸)은 오언시 비평서인 『시품(詩品)』 서(序)에서 사람의 마음이 왜 시로 움직이게 되는지를 자연의 기운과 사물의 감응(感應, 외물과 내면이 서로 부딪쳐 울림을 일으킴)으로 설명했다 [S12].

氣之動物,物之感人,故搖盪性情,行諸舞詠。 — 鍾嶸, 『詩品』 序 [S12]

계절의 기운이 사물을 움직이고, 그 사물의 변화가 다시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마음속 성정이 흔들려 춤과 노래로 형상화된다는 통찰이다 [S12]. 이 때문에 한시가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은 산문처럼 감정을 길게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시인은 먼저 봄비에 젖은 성터의 풀빛이나 가을 강가의 기러기 소리 같은 구체적인 경물(景物, 눈앞에 펼쳐진 계절과 풍경의 사물)을 포착하고, 그 장면을 배열하는 방식 속에 자신의 정감(情感)을 스미게 한다 [S12, S52]. 종영이 같은 서문에서 시의 세 가지 표현 원리로 제시한 흥(興)·비(比)·부(賦) 역시 외물과 내면의 관계를 다룬다 [S12].

故詩有三義焉:一曰興,二曰比,三曰賦。 — 鍾嶸, 『詩品』 序 [S12]

종영의 풀이에 따르면, 흥(興)은 말을 마친 뒤에도 여운이 남도록 사물에서 감흥을 일으키는 방식이고, 비(比)는 마음속 뜻을 사물에 빗대어 드러내는 방식이며, 부(賦)는 일과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베풀어 서술하되 그 안에 뜻을 담는 방식이다 [S12]. 후대 시론가들은 이러한 표현 원리가 산문적 논증이나 학식의 나열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남송(南宋)의 비평가 엄우(嚴羽)는 『창랑시화(滄浪詩話)』 권1 「시변(詩辯)」에서 시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S14].

詩有別材,非關書也;詩有別趣,非關理也。 — 嚴羽, 『滄浪詩話』 卷一 「詩辯」 [S14]

시에는 별도의 재능(別材)이 있어 책을 많이 읽은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시에는 별도의 정취(別趣)가 있어 이치를 따지는 논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S14]. 엄우는 물론 책을 널리 읽고 이치를 깊이 궁구해야 한다고 덧붙였으나, 궁극적으로 시의 생명은 설명적 언어를 넘어 경물과 정감이 하나로 녹아드는 함축과 여운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S14, S52].

고대 시가의 한역과 초기 한시 기록의 구별

한국의 초기 한시 전통을 살필 때는 문헌 기록의 층위를 세심하게 구별해야 한다.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가요 가운데 일부는 후대 사서나 문집에 한문 시구 형태로 전해지지만, 이는 원래 우리말로 불리던 노래가 후대에 한문으로 옮겨 적힌 한역가(漢譯歌)이므로 원래의 노랫말과 현전하는 한문 문장을 곧바로 동일한 창작물로 취급할 수 없다 [S02].

우리 문헌에서 작자와 창작 배경이 구체적인 한시 원문으로 전하는 이른 사례로는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수(隋)나라 장수 우중문(于仲文)에게 보냈다는 「증수우익위대장군우중문(贈隋右翊衛大將軍于仲文)」(『삼국사기』 원문은 별도 제목 없이 “문덕이 중문에게 시를 보냈다(文德遺仲文詩曰)”고 기록한다)이 널리 꼽힌다 [S20].

神策究天文,妙算窮地理。戰勝功旣高,知足願云止。 — 『三國史記』 卷44 「乙支文德」 [S20]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무늬를 다 헤아렸고, 오묘한 산술은 땅의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였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아졌으니, 만족할 줄 알아 이만 그치기를 바라노라.” 한 구가 다섯 글자로 이루어진 오언 네 구의 짧은 시 안에 상대의 전공을 치켜세우는 듯하면서 퇴각을 권고하는 외교적·군사적 긴장이 응축되어 있다 [S20]. 다만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612년(영양왕 23) 살수(薩水) 전투 전후이지만, 이 네 구는 당대에 편찬된 『수서(隋書)』 권60 「우중문전」에도 실려 있으며, 고려 인종 23년(1145)에 김부식(金富軾) 등이 편찬을 마친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4 열전에도 전한다 [S20, S89, FC01]. 따라서 이 작품을 ‘한국 한시의 절대적 최초작’으로 단정하기보다는, 현전하는 문헌 기록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전승 사례로 자리매김하는 편이 사료 비평에 부합한다 [S20, S89].


고체시와 근체시

시의 나이가 아니라 격률의 유무로 나누는 기준

한시의 시체(詩體, 글자 수·구수·음율 규칙에 따라 나뉘는 형식 갈래)는 크게 고체시(古體詩, 줄여서 고시·古詩)와 근체시(近體詩, 또는 금체시·今體詩)라는 두 축으로 나뉜다 [S04, S07]. 이름에 ‘옛 고(古)’와 ‘가까울 근(近)’이 들어 있어 고체시는 당(唐)나라 이전에만 지어진 시이고 근체시는 당나라 이후의 시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두 갈래를 나누는 핵심 기준은 창작된 시대가 아니라 엄격한 성률(聲律, 소리의 높낮이와 운율 규칙)의 적용 여부다 [S04, S07, S52].

고체시는 한위육조(漢魏六朝) 이래의 전통적인 시형을 이어받아, 한 편의 구수(句數, 줄 수)에 정해진 제한이 없고 구절 안의 평측(平仄, 평성과 측성의 배열)이나 압운(押韻, 구절 끝에 같은 계열의 운자를 놓음)의 제약이 비교적 느슨한 양식이다 [S04, S07]. 한 구의 글자 수도 오언과 칠언뿐 아니라 사언이나 글자 수가 일정하지 않은 잡언(雜言, 장단구)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시가 길어지면 중간에 압운하는 글자의 계열을 바꾸는 환운(換韻)도 폭넓게 허용된다 [S04, S07].

중요한 사실은 근체시가 완성된 당나라 이후에도 시인들이 고체시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S04, S07]. 정형 규범에 묶이지 않고 긴 호흡의 서사나 거침없는 사유를 펼쳐야 할 때, 당·송의 시인들과 고려·조선의 문인들은 언제든 고체시 양식을 택했다 [S02, S04]. 반대로 당나라 이전의 작품이거나 당대 이후에 지어졌더라도 근체시의 엄밀한 성률 법칙을 따르지 않은 시는, 설령 한 구가 다섯 글자이고 전체가 여덟 구인 외형을 지녔더라도 근체시가 아니라 고체시로 분류한다 [S04, S52].

근체시의 성립과 세 가지 기본 갈래

근체시(近體詩)라는 명칭의 ‘근(近)’이나 금체시(今體詩)의 ‘금(今)’은 오늘날의 독자를 기준으로 한 말이 아니라, 당나라 시인들이 앞선 시대의 고체(古體)에 맞서 당대에 새롭게 정립된 시체라는 뜻으로 붙인 역사적 이름이다 [S04]. 남조 제(齊)나라 영명(永明, 483~493) 연간에 심약(沈約) 등이 한자의 사성(四聲, 평성·상성·거성·입성)과 소리 대비를 의식적으로 탐구한 영명체(永明體)의 흐름을 거치고, 초당(初唐)의 심전기(沈佺期)·송지문(宋之問) 등에 이르러 자수·구수·평측·압운·대우의 규칙이 정밀한 체계로 자리를 잡았다 [S04, S06, S08, S11].

근체시의 형식 구분은 시의 주제가 아니라 외형적·음율적 규격에 따라 이루어진다 [S04, S07]. 먼저 한 구를 이루는 글자 수에 따라 다섯 글자인 오언(五言)과 일곱 글자인 칠언(七言)으로 나뉘고, 한 편을 이루는 구수에 따라 다음 세 가지 대표 형식으로 갈린다 [S04, S07].

  1. 절구(絶句): 네 구를 한 편으로 삼는 가장 집약된 정형시다. 오언절구는 스무 자(5자×4구), 칠언절구는 스물여덟 자(7자×4구)로 완결되며, 짧은 분량 안에 정경의 포착과 시선의 전환을 담아낸다 [S04, S07].
  2. 율시(律詩): 여덟 구 네 연(聯, 두 구가 이루는 한 쌍)을 한 편으로 삼는 근체시의 핵심 양식이다. 오언율시는 마흔 자(5자×8구), 칠언율시는 쉰여섯 자(7자×8구)로 짜이며, 가운데 두 연인 제3·4구(함련·頷聯)와 제5·6구(경련·頸聯)에서 문법 구조와 의미 범주를 나란히 맞추는 대우(對偶, 대장·對仗)를 갖추는 것이 원칙이다 [S02, S04, S07].
  3. 배율(排律): 율시의 평측·압운·대우 규칙을 여덟 구에 그치지 않고 열 구, 스무 구, 때로는 백 구 이상 길게 이어 붙이는 형식이다. 첫 연과 끝 연을 제외한 모든 중간 연에 대우를 배치하고 하나의 운목으로 끝까지 압운한다 [S04, S07].

근체시의 구절 구조와 낭송 호흡은 형식과 호흡에서, 사성과 압운의 음운사적 원리는 운과 평측에서 이어 다루며, 실제 창작을 위한 세부 규칙은 작법 편의 평측과 조율 및 대구와 대장에서 살필 수 있다.

작품으로 견주는 고체시와 근체시

고체시와 근체시가 실제 작품에서 어떻게 다른 호흡을 만드는지는 구체적인 시편을 나란히 읽어 보면 뚜렷해진다. 먼저 동진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오언고시 「귀원전거 기일(歸園田居 其一)」은 다섯 글자 구절이 스무 구에 걸쳐 이어지며, 세속의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고향 전원으로 돌아온 안도감을 차분한 서사로 풀어낸다 [S04, S59]. 구수가 여덟 구로 제한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구절 사이의 성조 배열도 후대 율시의 평측 틀에 묶이지 않는다.

근체시가 완숙기에 접어든 성당(盛唐) 시기에도 시인들은 시상에 따라 고체시와 근체시를 가려 썼다. 이백(李白)의 대표작 「월하독작(月下獨酌)」 첫 수는 당나라 때 지어진 오언시이지만, 근체시가 아니라 열네 구로 이루어진 오언고시다 [S04, S111].

花間一壺酒,獨酌無相親。舉杯邀明月,對影成三人。 — 李白, 「月下獨酌」 [S111]

“꽃 사이에서 술 한 단지 놓고, 함께할 벗 없이 홀로 잔을 기울인다.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그림자를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되었네.” [S111] 이 시는 첫 네 구에서 ‘친(親)’과 ‘인(人)’으로 운을 맞춘 뒤 이어지는 구절에서 운을 바꾸며(환운) 달과 그림자와 더불어 노래하고 춤추는 환상적 장면을 자유롭게 확장한다 [S04, S111]. 마찬가지로 왕유(王維)의 「송별(送別)」(첫 구 「하마음군주(下馬飮君酒)」)은 여섯 구로 이루어진 오언고시이며, 두보(杜甫)가 젊은 날 태산(泰山)을 바라보며 지은 「망악(望嶽)」은 여덟 구 사십 자의 외형을 지녔으나 평측과 점대(粘對)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오언고시다 [S04, S63, S65].

이와 달리 근체시는 정해진 글자 수와 성조의 교차 속에 시상을 밀도 높게 압축한다. 두보가 전란 속의 장안(長安)을 보며 지은 오언율시 「춘망(春望)」이나 만년에 장강(長江) 가에서 읊은 칠언율시 「등고(登高)」는 마흔 자와 쉰여섯 자라는 엄정한 격률과 대우의 균형 위에서 시대적 비애와 실존적 고독을 응결한 근체시의 전범이다 [S65, S112, S113]. 고체시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선율과 호흡의 확장에 강점이 있다면, 근체시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소리와 이미지를 대칭과 대비로 맞물리게 하는 건축적 긴장에 강점이 있다 [S04, S07, S52].


시·사·곡과 고전 시가의 여러 줄기

『시경』·『초사』·악부의 세 원류

당대에 근체시가 확립되기 이전부터 중국 고전 시가에는 서로 다른 문헌·지역·음악적 기원을 지닌 여러 줄기가 흘러왔다 [S10, S46, S47]. 그 가운데 후대 한시의 어휘와 형상화 방식에 가장 깊은 뿌리가 된 세 원류는 『시경』과 『초사』, 그리고 한대의 악부(樂府)다 [S10, S46, S47].

첫째, 『시경(詩經)』은 주(周)나라 초부터 춘추시대 중엽까지 주로 북방 황하 유역에서 불리던 노래들을 모은 중국 최고(最古)의 시가 집성이다 [S02, S46]. 현전하는 통용본은 모두 305편으로 집계되며, 각 지역의 민요와 지방 음악에 바탕을 둔 풍(風, 15국풍), 주나라 왕실과 귀족 사회의 연회·정치 가요인 아(雅, 대아·소아), 종묘 제사에서 조상의 공덕을 기리던 찬가인 송(頌, 주송·노송·상송)의 세 부분으로 편제되어 있다 [S02, S46]. 네 글자 한 구(사언·四言)를 기본 호흡으로 삼고 구절을 조금씩 바꾸어 되풀이하는 중장(重章) 형식이 두드러지며, 「주남(周南)」의 첫 편인 「관저(關雎)」가 그 전형을 보여 준다 [S46].

關關雎鳩,在河之洲。窈窕淑女,君子好逑。 — 『詩經』 「周南·關雎」 [S46]

“관관 울며 서로 화답하는 물수리는 황하의 모래톱에 있네. 그윽하고도 고운 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S46] 물가의 새라는 자연물에서 시상을 일으켜(興) 인간의 인연으로 나아가는 이 구성은 후대 한시에서 경물과 인사를 나란히 놓는 시법의 원형이 되었다 [S12, S46].

둘째, 전국시대 남방 초(楚)나라의 풍토와 무속·신화 전통에서 자라난 『초사(楚辭)』는 『시경』의 단정한 사언 정형과 전혀 다른 호흡을 열어젖혔다 [S47, S54].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과 그 후학들의 작품을 묶은 이 계열은 구절 길이가 길고 박자 마디 사이에 어조사 ‘혜(兮)’를 넣어 격정적인 독백과 비장한 탄식을 쏟아낸다 [S47, S54]. 굴원 전통을 대표하는 장편 서정시 「이소(離騷)」와 제사 악가에서 비롯된 「구가(九歌)」는 화려한 향초(香草)의 비유와 하늘을 유람하는 상상력으로 고전 시가의 서정적 지평을 넓혔다 [S47, S54].

長太息以掩涕兮,哀民生之多艱。 — 「離騷」 [S47]

“길게 한숨 쉬며 흐르는 눈물을 닦노라니, 백성의 삶이 이토록 고달픈 것이 슬프구나.” [S47] 『시경』이 공동체적 정서와 절제된 균형을 보여 준다면, 『초사』는 개인의 고뇌와 낭만적 상상을 장편의 호흡으로 밀어붙인 원류로 평가된다 [S47, S54].

셋째, 악부(樂府)는 원래 관청 이름에서 출발해 시가 양식의 이름으로 굳어진 갈래다 [S07, S10]. 후한(後漢) 반고(班固)가 편찬한 『한서(漢書)』 권30 「예문지(藝文志)」는 한대 악부 제도의 성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S10].

自孝武立樂府而采歌謠,於是有代趙之謳,秦楚之風,皆感於哀樂,緣事而發。 — 『漢書』 卷三十 「藝文志」 [S10]

한 무제(孝武帝)가 악부라는 음악 관서를 세워 각지의 가요를 채집하게 하니, 대(代)·조(趙) 땅의 노래와 진(秦)·초(楚) 땅의 풍속 가요가 모두 슬픔과 즐거움에 감응하고 구체적인 사건을 인연으로 삼아 터져 나왔다는 기록이다 [S10]. 이렇게 관서에서 채집·보존한 민간의 노래와 귀족의 악장을 악부시(樂府詩)라 부르게 되었고, 후한 말 건안(建安) 시기에 이르러 조조(曹操)의 「단가행(短歌行)」이나 조식(曹植)의 「공연시(公讌詩)」처럼 문인들이 악부의 옛 제목이나 오언 시형을 빌려 개인의 회포를 읊는 문인 악부와 오언고시가 본격화되었다 [S07, S56, S58]. 나아가 중당(中唐)의 백거이(白居易)·원진(元稹) 같은 시인들은 옛 악부 제목에 기대지 않고 당대 민생의 사건을 새 제목으로 읊는 신악부(新樂府)를 창작했다 [S07, S66]. 다만 후대 문인들이 ‘~행(行)’, ‘~가(歌)’, ‘~곡(曲)’ 같은 악부 제목을 이어 썼다고 해서 그 작품들이 모두 한대의 원래 악곡에 맞추어 연주된 것은 아니며, 시대에 따라 실제 가창 여부와 음악적 맥락은 크게 달라졌다 [S07].

시(詩)·사(詞)·곡(曲)의 분화와 공존

흔히 중국 운문문학의 흐름을 ‘당시(唐詩) · 송사(宋詞) · 원곡(元曲)’이라는 말로 요약하곤 한다. 각 시대에 새롭게 꽃피운 대표 양식을 기억하기에는 편리한 말이지만, 마치 당나라의 시가 송나라에 이르러 사(詞)로 완전히 대체되고 원나라에 이르러 다시 곡(曲)으로 바뀐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 [S07, S14]. 시·사·곡은 서로 다른 음악적·형식적 조건에서 태어나 시대마다 나란히 공존하며 영향을 주고받은 갈래들이다 [S07].

사(詞)는 당대 중·후기 도시 문화와 연회 음악(연악·燕樂)의 발달 속에서 노래 가사로 출발하여 송대에 문학적으로 만개한 양식이다 [S07]. 오언이나 칠언으로 줄 길이를 가지런히 맞추는 근체시와 달리, 사는 사패(詞牌, 「보살만」·「수조가두」·「염노교」처럼 원래 악곡의 가락을 가리키는 이름)마다 미리 정해진 구수와 글자 수, 평측과 압운 자리에 맞추어 글을 채워 넣는 전사(填詞, 곡조의 틀에 글자를 메움) 방식을 따른다 [S07]. 한 편 안에서 짧은 구절과 긴 구절이 교차하기 때문에 ‘장단구(長短句)’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S07]. 그러나 송대 문인들에게 사는 시를 대신한 유일한 장르가 아니었다. 소식(蘇軾)·황정견(黃庭堅)·육유(陸游) 등 송대의 대가들은 빼어난 사를 짓는 동시에 방대한 분량의 고체시와 근체시를 남기며 송시(宋詩)만의 지성적이고 사유 깊은 시 세계를 구축했다 [S07, S14, S72, S73, S74].

곡(曲)은 금(金)·원(元) 시대에 북방 계통의 음악과 도시의 통속 연희가 결합하면서 발전한 운문 양식이다 [S07]. 곡 문학은 크게 무대 위에서 배우의 노래(창·唱)와 대사(백·白), 몸짓(과·科)이 어우러지는 연극 대본인 잡극(雜劇)과, 극적 줄거리 없이 독립된 가요로 불리던 산곡(散曲)으로 나뉜다 [S07]. 곡 역시 곡패(曲牌)라는 정해진 곡조 틀을 따르지만, 사(詞)에 비해 구어와 속어를 훨씬 자유롭게 수용하고 정해진 글자 수 밖에 리듬을 살리는 보조 글자인 친자(襯字)를 덧붙일 수 있어 생동감이 넘쳤다 [S07]. 이처럼 사와 곡이 차례로 흥기하는 동안에도 고체시와 근체시를 아우르는 좁은 의미의 ‘시(詩)’는 과거 시험과 문인 교유, 개인 문집의 중심 양식으로 청대(淸代)와 근대까지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S04, S07, S09].

고전 시가의 주요 갈래 비교

갈래형성·전개 시기구절과 글자 수성률·압운 규범음악·연행과의 관계
고체시(고시·악부)선진·한위육조에 형성되어 당대 이후에도 지속 창작사언·오언·칠언·잡언(장단구) 등 다양하며 전체 구수 제한 없음평측 제약이 느슨하고 압운·환운(중간에 운을 바꿈)의 폭이 넓음초기 악부는 관서 채집 가요였으나 후대 고시·의고 악부는 독서·낭송용 시로 정착
근체시(절구·율시·배율)남북조 성률 실험을 거쳐 당대에 정형 확립오언·칠언으로 구 길이를 통일하고 절구(4구)·율시(8구)·배율(10구 이상)로 구분평수운 기준 일운도저(한 운목 유지), 평측 교차·점대·함련과 경련의 대우 엄수악곡 반주보다 한자 자체의 성조 대비와 구절 마디가 만드는 언어 음악성에 기반
사(詞, 장단구)당대 중·후기 발생, 오대·송대에 전성기사패(詞牌)의 규격에 따라 한자부터 열 자 안팎까지 장단구가 교차사패마다 지정된 글자 수·평측·압운(평성·측성운 및 환운 포함)을 엄격히 준수연악(연회 음악) 가사로 출발했으나 후대에는 악보가 실전되어 문학적 정형시로 창작
곡(曲, 산곡·잡극)금·원 시대에 발전하여 명·청대까지 지속곡패(曲牌) 규격을 따르되 정규 글자 밖에 친자(보조 글자) 삽입 허용당시 북방 음운 체계에 기반해 압운하며 평성·상성·거성이 통운되기도 함도시 연희·무대 공연(잡극) 및 민간·문인 가창(산곡)과 밀접하게 결합

동아시아 공통 문어와 한국의 한시 전통

한시가 중국에서 성립한 시형과 문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동아시아 각국의 문학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까닭은, 한자가 표의문자(表意文字, 글자마다 뜻을 지닌 문자)로서 서로 다른 모어(母語)를 쓰는 지역 사이에서도 시각적·문법적 의미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S02, S03]. 한국 문인들은 각자의 모어인 한국어 한자음으로 시를 읽고 외우면서도, 지면 위에서는『시경』·『초사』 이래의 고전 어휘와 당·송 근체시의 정밀한 평측·압운 규범을 공유했다 [S02, S03, S04].

그러나 형식과 문어의 공유가 곧 문학적 종속이나 복제를 뜻하지는 않는다. 신라 말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한 최치원(崔致遠)의 고독한 서정에서부터, 고려 문인들이 과거 제술업(製述業)과 외교 문한직 속에서 벼려 낸 오언·칠언 율시, 조선 전기 『동문선(東文選)』 편찬을 통해 천명한 “우리나라의 문(我國之文)”이라는 자의식,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파와 여항(閭巷)·여성 시인들이 포착한 조선의 풍속과 민생에 이르기까지, 한국 한시는 언제나 이 땅의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호흡했다 [S02, S03, S24, S37, S114, S124].

이어지는 장들은 이 넓은 한시의 세계를 단계별로 안내한다. 형식과 호흡에서는 오언·칠언과 절구·율시·배율의 짜임 및 한 줄을 읽는 호흡의 마디를 살피고, 운과 평측에서는 한자 고유의 사성과 압운이 왜 생겨났으며 현대 발음과 어떻게 다른지를 음운사의 눈으로 풀어낸다. 나아가 한시의 역사와 시대별 시인에서는 선진 시가부터 청대 시론까지 중국 한시사의 흐름과 주요 시인들의 세계를 짚어 보고, 마지막 한국의 한시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개항기까지 한국 한시가 걸어온 독자적 역사와 대표 작품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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