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수와 구수
한 구의 길이: 사언에서 오언·칠언으로
한시 한 편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외형적 특징은 한 줄(구·句)에 몇 글자가 놓여 있는가, 그리고 전체가 몇 줄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S04, S07]. 한시에서는 한 구를 이루는 한자의 개수를 ‘언(言)’이라는 단위로 세고, 한 편을 이루는 줄의 개수를 ‘구(句)’ 또는 두 구를 묶은 ‘연(聯)’으로 센다 [S02, S04, S07]. 이때 제목과 문장부호, 후대 독자가 독해를 돕기 위해 붙인 현토(懸吐)는 본문 글자 수에 포함하지 않는다 [S52].
중국 고전 시가의 역사에서 주류 시형의 구절 길이는 시대에 따라 점차 변모해 왔다 [S06, S07]. 선진(先秦) 시대의 시가 집성인 『시경(詩經)』에서는 네 글자로 한 구를 이루는 사언(四言)이 기본 호흡이었다 [S46]. 『시경』 「주남·관저(周南·關雎)」의 첫머리가 보여 주듯, 사언시는 네 글자 구절을 거듭 쌓아 올리며 단정하고 안정된 두 박자(‘2+2’)의 리듬을 만든다 [S46].
關關雎鳩,在河之洲。 — 『詩經』 「周南·關雎」 [S46]
“관관 우는 물수리는 황하의 모래톱에 있네.” [S46] 이와 달리 남방 초(楚)나라의 시가 전통인 『초사(楚辭)』의 「이소(離騷)」는 일정한 네 글자 단위에 머물지 않고, 구절 가운데나 끝에 어조사 ‘혜(兮)’를 넣어 여섯 자·일곱 자 이상의 길고 굴곡진 호흡을 구사했다 [S47].
한대(漢代)를 거치며 악부(樂府) 가요와 문인 시가 속에서 새로운 중심 길이로 떠오른 것이 한 구를 다섯 글자로 짓는 오언(五言)과 일곱 글자로 짓는 칠언(七言)이다 [S04, S06, S07]. 사언이 네 글자 두 마디로 딱 떨어져 변화의 폭이 좁았다면, 오언은 홀수 글자인 다섯 자가 ‘두 자 + 세 자’로 나뉘면서 한 구 안에 비대칭의 탄력과 서술의 여유를 확보했다 [S52, S98]. 남조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가 편찬한 『문선(文選)』에 묶여 전하는 한·위 무렵의 오언고시 작품군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 가운데 첫 편인 「행행중행행(行行重行行)」은 오언구가 연속되며 이별의 정한을 풀어내는 초기 오언시의 전형을 보여 준다 [S19].
行行重行行,與君生別離。相去萬餘里,各在天一涯。 — 『古詩十九首』 「行行重行行」 [S19]
“가고 가고 또 거듭 걸어가니, 그대와 살아 생이별을 하였네. 서로 떨어진 거리가 만여 리나 되어, 각기 하늘 한쪽 끝에 머물러 있구나.” [S19] 다섯 글자씩 이어지는 구절이 걷는 발걸음의 반복과 아득한 공간감을 자연스럽게 실어 나른다.
칠언(七言)은 오언 앞에 두 글자 한 마디가 더해진 일곱 글자 구절로, 한층 유려하고 넉넉한 호흡을 지닌다 [S04, S07, S52]. 후한 말·위(魏) 초의 문인 조비(曹丕)가 지은 「연가행(燕歌行)」 두 수 가운데 첫째 수(其一)는 일곱 글자 구절이 열다섯 구 연속으로 이어지는 현전 초기 완형 칠언시로 꼽힌다 [S06, S57, S120].
秋風蕭瑟天氣涼,草木搖落露為霜。 — 曹丕, 「燕歌行」 其一 [S120]
“가을바람 쓸쓸히 불어 날씨가 서늘해지고, 초목은 흔들려 잎을 떨구며 이슬은 서리가 되네.” [S120] 오언보다 두 글자가 늘어난 칠언 구절은 계절의 바람 소리와 기온의 변화, 초목의 흔들림과 이슬이 서리로 바뀌는 과정을 한 호흡 안에 촘촘히 담아낸다 [S06, S120].
한 편의 규모: 절구·율시·배율과 고체시의 변이
오언과 칠언이 ‘한 구 안의 글자 수’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절구(絶句)·율시(律詩)·배율(排律)은 근체시에서 ‘한 편 전체의 구수와 짜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S04, S07]. 이 두 가지 기준은 서로 교차하여 결합한다 [S04, S07].
- 절구(絶句): 네 구(4행)로 한 편을 완결하는 형식으로, 근체시의 율절(律絶)과 고체시의 고절(古絶)이 있다. 오언 네 구로 지으면 총 스무 자의 오언절구(五言絶句)가 되고, 칠언 네 구로 지으면 총 스물여덟 자의 칠언절구(七言絶句)가 된다 [S04, S07].
- 율시(律詩): 여덟 구(8행) 네 연으로 한 편을 이루는 근체시 형식이다. 오언 여덟 구로 지으면 총 마흔 자의 오언율시(五言律詩)가 되고, 칠언 여덟 구로 지으면 총 쉰여섯 자의 칠언율시(七言律詩)가 된다 [S02, S04, S07].
- 배율(排律): 율시의 성률과 대우(對偶) 관습을 여덟 구보다 긴 편에 확장하여 열 구(오언 오운·五韻), 열두 구(육운·六韻), 스무 구 이상으로 길게 이어 짓는 갈래다 [S04, S07].
| 형식 갈래 | 한 구의 글자 수 | 한 편의 구수(연수) | 본문 총 글자 수 | 대표적 짜임과 특징 |
|---|---|---|---|---|
| 오언절구(五言絶句) | 5자 | 4구 | 20자 | 가장 압축된 정형으로 여백과 함축이 두드러짐 |
| 칠언절구(七言絶句) | 7자 | 4구 | 28자 | 유려한 가락 속에 정경과 전환을 담기 알맞음 |
| 오언율시(五言律詩) | 5자 | 8구(4련) | 40자 | 수련·함련·경련·미련의 4단 구조, 가운데 두 연 대우 |
| 칠언율시(七言律詩) | 7자 | 8구(4련) | 56자 | 성률과 대우의 정밀함이 집약된 장중한 정형 |
| 배율(排律) | 5자(주로 오언, 간혹 칠언) | 10구(5련) 이상 | 50자 이상 | 첫 연과 끝 연을 뺀 모든 중간 연에 대우를 배치 |
| 고체시(古體詩·樂府) | 4자·5자·7자·장단구 | 제한 없음 | 제한 없음 | 구수·행 길이·환운이 자유롭고 평측 규범에 비구속 |
반면 고체시(고시와 악부)는 이러한 네 구·여덟 구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S04, S07]. 예컨대 동진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飲酒)」 기오(其五)는 열 구로 이루어진 오언고시이며, 성당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은 열네 구로 이루어진 오언고시다 [S111, S121].
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問君何能爾,心遠地自偏。 — 陶淵明, 「飲酒」 其五 [S121]
“사람 사는 마을 안에 오두막을 지었건만,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없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사는 곳도 절로 외진 것이라네.” [S121] 나아가 중당 백거이(白居易)의 신악부 「매탄옹(賣炭翁)」처럼 세 글자 구절(“賣炭翁”, “一車炭,千餘斤”)과 일곱 글자 구절을 섞어 쓰는 잡언(장단구) 고체시는 인물의 행적과 극적인 사건을 서사적으로 펼치는 데 활용되었다 [S04, S07].
구와 연, 그리고 대우의 건축미
구(句)와 연(聯): 출구와 대구의 짝
한시를 읽을 때 한 줄의 시행인 ‘구(句)’ 못지않게 중요한 단위가 두 구를 하나로 묶은 ‘연(聯, 또는 련)’이다 [S02, S07]. 현대 자유시에서 연(stanza)이 여러 행으로 이루어진 문단을 뜻하는 것과 달리, 한시에서 1연(一聯)은 언제나 나란히 마주 선 두 구절의 짝을 가리킨다 [S02, S07, S52].
한 연을 이루는 두 구 가운데 앞선 홀수 구(제1·3·5·7구)를 ‘출구(出句, 먼저 나가는 구절)’ 또는 ‘상구(上句)’라 부르고, 이를 받아 뒤따르는 짝수 구(제2·4·6·8구)를 ‘대구(對句, 마주 받는 구절)’ 또는 ‘하구(下句)’라 부른다 [S52]. 근체시에서 출구와 대구는 단순히 두 줄이 나란히 놓인 것이 아니다. 출구 끝은 원칙적으로 압운하지 않는 측성(仄聲)으로 열어 두고 대구 끝은 평성(平聲) 압운자로 매듭지으며, 두 구 내부의 평측 흐름을 서로 반대로 맞세워 소리와 의미가 한 번 열렸다가 닫히는 완결된 호흡 단위를 형성한다 [S07, S52, S53].
율시의 네 연: 수련·함련·경련·미련
여덟 구로 짜이는 율시(律詩)는 두 구씩 묶인 네 개의 연이 인체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듯 유기적인 이름을 갖는다 [S02].
- 수련(首聯, 제1·2구): ‘머리 수(首)’ 자를 써서 시의 첫머리를 여는 연이다. 기련(起聯)이라고도 부르며, 시인이 서 있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이나 시상을 일으킨 계기를 제시한다 [S02, S52].
- 함련(頷聯, 제3·4구): ‘턱 함(頷)’ 자를 쓰며, 수련에서 열린 배경을 받아 구체적인 경물이나 상황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이는 연이다 [S02, S52].
- 경련(頸聯, 제5·6구): ‘목 경(頸)’ 자를 쓰며, 함련의 묘사를 한 걸음 더 밀고 나가거나 시선의 방향·정서의 층위를 전환하여 시의 중후반부를 지탱하는 연이다 [S02, S52].
- 미련(尾聯, 제7·8구): ‘꼬리 미(尾)’ 자를 써서 시 전체를 갈무리하는 마지막 연이다. 결련(結聯)이라고도 부르며, 앞서 전개한 정경과 사건을 시인의 내밀한 감회나 여운으로 수렴한다 [S02, S52].
여기서 주의할 점은 수련·함련·경련·미련이라는 네 연의 명칭이 여덟 구로 이루어진 율시 고유의 구조 표지라는 사실이다 [S02]. 네 구로만 이루어진 절구(絶句)의 각 구절에는 율시의 네 연 이름을 그대로 옮겨 붙이지 않으며, 절구는 제1구·제2구·제3구·제4구(또는 기구·승구·전구·결구)로 부른다 [S02, S04].
율시 네 연 가운데 가운데 두 연인 함련(3·4구)과 경련(5·6구)은 원칙적으로 대우(對偶, 대장·對仗)를 갖추어야 하는 자리다 [S02, S07]. 대우란 출구와 대구의 같은 자리에 놓인 글자들이 어법적 성분(주어·술어·목적어·수식어)과 품사(명사·동사·형용사), 나아가 의미의 범주(하늘과 땅, 산과 물, 꽃과 새, 옛날과 오늘 등)까지 좌우 대칭으로 짝을 이루는 구성 원리다 [S02, S07, S52]. 수련(1·2구)과 미련(7·8구)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대우의 의무에서 자유로워 자연스러운 문장 흐름으로 시를 열고 닫지만, 시인의 의도에 따라 수련부터 대우를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S02, S07, S52]. 대우의 구체적인 짝짓기 방법과 피해야 할 병폐는 작법 편의 대구와 대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작품으로 읽는 율시와 절구의 짜임
율시의 네 연 구조와 대우가 어떻게 시적 긴장을 만들어 내는지는 두보(杜甫)의 오언율시 「춘망(春望)」과 칠언율시 「등고(登高)」에서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S112, S113]. 먼저 안사의 난(安史之亂)으로 황폐해진 장안성에서 지은 오언율시 「춘망」의 첫머리(수련)를 보자 [S113].
國破山河在,城春草木深。 — 杜甫, 「春望」 [S113]
“나라는 부서졌는데 산하는 남아 있고, 성안에 봄이 오니 풀과 나무만 깊어지네.” [S113] 비록 수련은 대우가 필수가 아닌 자리이지만, 두보는 제1구의 ‘국파(國破, 나라가 부서짐)’와 제2구의 ‘성춘(城春, 성에 봄이 옴)’, ‘산하재(山河在, 산하는 그대로 있음)’와 ‘초목심(草木深, 초목이 무성함)’을 정밀한 대우로 맞세워 인간 세계의 파멸과 자연의 무심한 생명력을 첫 연부터 강렬하게 대비시켰다 [S52, S113]. 이어 함련에서는 꽃과 새를 보며 눈물 흘리고 마음 놀라는 정서를, 경련에서는 석 달째 이어지는 봉화(烽火)와 만금(萬金)에 맞먹는 집 편지(家書)를 다시 대우로 엮은 뒤, 미련에서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비녀조차 이기지 못한다는 시인의 초상으로 시를 맺는다 [S113].
칠언율시 「등고(登高)」는 여덟 구 전체가 대우로 짜인 특수한 사례이면서, 특히 수련과 함련의 공간 이동이 빼어나다 [S112].
風急天高猿嘯哀,渚清沙白鳥飛回。無邊落木蕭蕭下,不盡長江滾滾來。 — 杜甫, 「登高」 [S112]
“바람은 급하고 하늘은 높은데 원숭이 울음소리 구슬프고, 물가는 맑고 모래는 흰데 새들이 날아 감도네. 끝없는 지는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다함없는 장강 물결은 굽이굽이 밀려오누나.” [S112] 수련(1·2구)이 바람 부는 높은 하늘과 물가의 흰 모래톱이라는 근경·중경의 시청각 이미지를 촘촘하게 대조한다면, 함련(3·4구)은 ‘무변낙목(無邊落木, 끝없이 지는 나뭇잎)’과 ‘부진장강(不盡長江, 다함없는 장강)’, ‘소소하(蕭蕭下, 쓸쓸히 떨어짐)’와 ‘곤곤래(滾滾來, 도도히 밀려옴)’의 거대한 대우를 통해 시선을 우주적 공간과 영원한 시간의 흐름으로 단숨에 확장한다 [S52, S112].
네 구로 이루어지는 절구는 율시처럼 가운데 두 연의 대우를 의무로 삼지 않는 대신, 짧은 네 줄 안에서 여백과 반전을 활용한다 [S04, S07]. 왕유(王維)의 오언절구 「녹채(鹿柴)」는 측성으로 압운하는 고절(古絶)로, 스무 글자만으로 깊은 산속의 적막을 그린다 [S110].
空山不見人,但聞人語響。 — 王維, 「鹿柴」 [S110]
“빈 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사람 말소리 메아리만 들리네.” [S110] 제1·2구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과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고요를 환기한 뒤, 제3·4구에서는 숲속으로 비쳐 들어와 푸른 이끼 위를 다시 비추는 저녁 햇살로 시선을 옮긴다 [S110]. 같은 왕유의 오언절구 「산중송별(山中送別)」(카탈로그 표제 「송별」) 역시 산속에서 벗을 배웅하고 사립문을 닫는 현재의 동작(1·2구)에서 내년 봄풀이 푸르러질 때 벗이 돌아올지 묻는 미래의 상상(3·4구)으로 호흡을 전환한다.
칠언절구 또한 스물여덟 자 안에서 작품마다 다채로운 구성을 취한다 [S04, S07]. 만당 시인 두목(杜牧)의 「적벽(赤壁)」은 모래 속에 묻힌 부러진 창을 갈아 닦으며 옛 왕조를 알아보는 구체적 물건(1·2구)에서 출발해, 만약 동풍이 주유(周瑜)에게 편의를 주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법적 사유(3·4구)로 시상을 뒤집는다. 북송 소식(蘇軾)의 칠언절구 「춘소(春宵)」는 봄밤의 한순간이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는 선언(1구)과 꽃향기·달그늘의 정경(2구)을 먼저 던진 뒤, 누대의 노랫소리와 그네 터의 깊어 가는 밤을 대조적인 두 구(3·4구)로 나란히 놓아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칠언절구는 네 행이라는 외형은 같아도 어느 구절에 대우를 두고 어디에서 시상을 꺾는지는 작품마다 유연하게 달라진다 [S04, S07].
말의 마디와 낭송의 호흡
오언 2+3과 칠언 2+2+3의 음보 감각
한문 시구는 띄어쓰기 없이 한 줄로 이어지지만, 이를 소리 내어 읽거나 속으로 음미할 때는 글자들이 낱낱이 흩어지지 않고 몇 글자씩 묶여 말의 마디(음보·音步)를 이룬다 [S52, S97]. 근체시 읽기에서 가장 기본적인 호흡의 실마리로 안내되는 것은 오언의 ‘2+3’ 마디와 칠언의 ‘2+2+3’ 마디다 [S52, S53, S97].
오언 구절은 앞의 두 글자(제1·2자)가 한 마디를 이루고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뒤의 세 글자(제3·4·5자)가 이어지는 ‘2+3’ 구조를 기본으로 삼는다 [S52, S97]. 앞서 본 왕유의 「녹채」 제1구 ‘공산불견인(空山不見人)’을 읽을 때 ‘공산(空山, 빈 산) / 불견인(不見人,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으로 마디를 나누고, 두보의 「춘망」 제1구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를 ‘국파(國破, 나라는 부서졌으나) / 산하재(山河在, 산하는 남아 있다)’로 끊어 읽는 식이다 [S110, S113].
칠언 구절은 오언 앞에 두 글자 마디가 하나 더 붙어 ‘2+2+3’의 호흡을 이룬다 [S52, S97]. 조비의 「연가행」 첫 구 ‘추풍소슬천기량(秋風蕭瑟天氣涼)’은 ‘추풍(秋風) / 소슬(蕭瑟) / 천기량(天氣涼)’으로 읽히고, 두보의 「등고」 함련 ‘무변낙목소소하(無邊落木蕭蕭下)’는 ‘무변(無邊) / 낙목(落木) / 소소하(蕭蕭下)’로 읽힌다 [S112, S120]. 앞의 네 글자가 두 자씩 안정된 걸음으로 나아가고 뒤의 세 글자가 매듭을 짓기 때문에, 오언이 응축되고 긴장감 있는 호흡을 들려준다면 칠언은 한결 유장하고 리듬감 있는 가락을 형성한다 [S52, S97].
문장 성분의 경계와 호흡의 유연성
그러나 ‘오언은 2+3, 칠언은 2+2+3’이라는 도식을 모든 시구의 문장 뜻을 강제로 자르는 절대 법칙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S07, S97, S98]. 실제 한시 구절에서 소리의 마디(음보)와 문법적 의미의 마디(어법 구조)는 서로 일치하기도 하고 미묘하게 엇갈리기도 한다 [S97, S98].
첫째, 구절 끝의 세 글자(하삼자·下三字) 내부도 의미 결합에 따라 다시 ‘1+2’나 ‘2+1’로 나뉜다 [S52, S98]. 예컨대 ‘국파 / 산하재(山河+在)’는 뒤 세 글자가 ‘산하(명사, 2) + 재(동사, 1)’로 묶여 전체 의미 구조가 ‘2+2+1’에 가깝고, ‘공산 / 불견인(不+見人 또는 不見+人)’은 술어와 목적어의 결합 방식에 따라 ‘2+1+2’나 ‘2+2+1’의 결을 띤다 [S98, S110, S113]. 특히 한·위·육조 시대의 초기 오언고시를 분석한 연구들은 당대 근체시처럼 ‘2+3’ 호흡으로 정형화되기 이전에 ‘2+1+2’나 ‘2+2+1’ 등 다양한 구절 리듬이 활발하게 공존했음을 지적한다 [S98].
둘째, 때로는 한 행의 낭송 음보 경계와 문장 성분의 경계가 서로 다른 자리에 놓여 시적 긴장을 낳기도 한다 [S97, S98]. 문장 뜻이 앞 마디에서 끊어지지 않고 다음 마디로 곧장 흘러넘칠 때, 독자는 규칙적인 박자 감각 위에서 의미의 연속성을 함께 느끼게 된다 [S07, S98].
셋째, 실제로 소리를 내어 읽는 방식에 따라서도 호흡은 달라진다 [S97]. 현대인이 일반 산문을 읽듯 또박또박 끊어 읽는 ‘낭독(朗讀)’과, 전통적인 선율과 장단을 타며 길게 읊조리는 ‘음영(吟誦, 또는 창송)’을 실험 음성학적으로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현대 낭독에서는 의미 단위에 따른 ‘2+3’·‘2+2+3’ 휴지(休止, 쉼)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반면 전통 음영에서는 짝수 자리 글자를 길게 끌거나 구절 끝의 호흡을 달리 배분하는 등 발성과 호흡 구성에서 차이가 관찰된다 [S97]. 결국 2+3과 2+2+3은 한시 구절의 기본 뼈대를 파악하는 든든한 안내선이지만, 실제 독서에서는 각 구절의 문맥과 어법 구조를 따라 자연스럽게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 [S07, S97, S98].
기승전결이라는 독법과 그 한계
절구의 네 구나 율시의 네 연이 시상을 어떻게 전개하는지를 설명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틀이 기(起)·승(承)·전(轉)·결(結), 곧 기승전결(起承轉結)이다 [S02, S14, S52]. 제1구(또는 수련)에서 시상을 일으키고(起), 제2구(함련)에서 그 흐름을 이어받아 구체화한 뒤(承), 제3구(경련)에서 시선이나 시간·사유의 방향을 한 번 크게 돌려 새로운 국면을 열고(轉), 제4구(미련)에서 전체 정서를 하나로 여미며 여운을 남긴다(結)는 설명이다 [S02, S52].
이 설명 방식은 짧은 정형시가 단조로운 나열에 빠지지 않고 제3구에서 어떻게 극적인 전환을 이루는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길잡이다 [S52]. 하지만 고전 절구와 율시의 모든 작품을 기승전결이라는 단일한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출 수는 없다 [S04, S07]. 어떤 절구는 제1·2구와 제3·4구가 두 쌍의 병렬적인 대우 풍경으로만 나란히 놓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첫 구부터 결말에 해당하는 강렬한 선언을 던진 뒤 나머지 세 구로 그 정경을 풀어내기도 한다 [S04, S07]. 따라서 기승전결은 절구를 읽고 짓는 대표적인 한 가지 길로 이해하되, 실제 작품을 읽을 때는 구절들이 서로 호응하고 대조되는 고유한 결을 먼저 살피는 편이 바람직하다 [S02, S07]. 시상을 실제로 배치하고 다듬는 창작 절차는 작법 편의 짜임과 짓는 순서에서 다룬다.
정형의 형성 과정: 육조의 실험에서 당대의 정착으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근체시의 정교한 형식—오언과 칠언의 정돈된 구절 길이, 네 구와 여덟 구의 구성, 평측의 교차와 함련·경련의 대우—은 어느 날 한 사람의 천재가 단번에 발명해 낸 규칙이 아니다 [S06, S08]. 이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수백 년 동안 문인들이 쌓아 올린 대구(對句) 수련과 성조 실험이 초당(初唐) 시단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정착한 역사적 산물이다 [S06, S08, S11].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사대부 문인들이 산수(山水)와 전원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두 구절을 나란히 짝지우는 대우 기법이 크게 발달했고, 이와 맞물려 한자음에 내재한 네 가지 성조(사성·四聲)의 높낮이와 울림 차이를 시의 리듬에 의식적으로 반영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S06, S08, S11]. 특히 남조 제(齊)나라 영명(永明, 483~493) 연간에 활동한 심약(沈約) 등은 한 구와 한 연 안에서 같은 성조나 같은 초성·운모가 겹쳐 소리가 둔탁해지는 현상을 피하고, 소리의 높낮이가 번갈아 교체되도록 하는 시론을 펼쳤다 [S08, S11]. 심약이 『송서(宋書)』 「사령운전론(謝靈運傳論)」에 남긴 다음 구절은 당시 시인들이 소리의 대비를 어떻게 자각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S11].
欲使宮羽相變,低昂舛節;若前有浮聲,則後須切響。 — 沈約, 『宋書』 「謝靈運傳論」 [S11]
“궁음(宮音)과 우음(羽音)이 서로 바뀌고 낮은 소리와 높은 소리가 마디를 달리하게 하려는 것이니, 만약 앞에 떠오르는 소리가 있다면 뒤에는 반드시 절실하게 울리는 소리가 따라야 한다.” [S11] 이 시기의 시풍을 연호를 따서 영명체(永明體, 또는 신체시·新體詩)라 부른다 [S04, S08].
다만 영명체의 성조 실험을 당대에 확립된 율시 규범과 완전히 똑같은 제도로 보거나, 육조 시인을 단순히 당대 근체시를 예비한 ‘미완성자’로 낮추어 보아서는 안 된다 [S06, S08, S11]. 심약 자신의 현존 시 작품을 분석한 현대 음운·시률 연구들에 따르면, 영명체 시인들이 추구한 음운 조화와 후대 당나라 율시의 정형 규칙(예컨대 연과 연을 이어 붙이는 점대 법칙 등)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으며, 이 이행 과정의 구체적 경로를 두고도 학계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S08, S11].
또한 당나라에 들어선 뒤에도 모든 근체시 갈래가 같은 시점에 완성된 것은 아니다 [S06]. 초당의 상관이(上官儀)와 심전기(沈佺期)·송지문(宋之問) 등을 거치며 오언율시의 평측과 점대 규범이 먼저 안정적인 틀을 갖추었고, 칠언율시는 그보다 조금 더 늦게 성당의 왕유·두보 등에 이르러 원숙한 정형으로 자리 잡았다 [S04, S06]. 결국 근체시의 형식과 호흡은 시인의 자유를 구속하기 위해 외부에서 부과된 기계적 틀이 아니라, 오언과 칠언이라는 짧은 한자 시구 안에서 소리의 변화와 의미의 균형을 가장 아름답게 구현하려 했던 오랜 문학적 탐색의 결정체다 [S06, S07, S52]. 이어지는 운과 평측에서는 이 형식을 속으로부터 지탱하는 소리의 질서, 곧 사성과 압운의 원리를 본격적으로 살핀다.
출처
- [S0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진, 「한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789 (등급 B, 공공누리 제1유형)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S0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진, 「근체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7464 (등급 B, 공공누리 제1유형)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S06] 孫景超, 「从矢口成韵到格式严苛——古典诗歌格律化进程」, 中国社会科学院, 2015, https://www.cass.cn/xueshuchengguo/wenzhexuebulishixuebu/201509/t20150921_2408475.shtml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9 ↩10 ↩11
- [S07] Shanghai International Studies University Global Humanities Quarterly, 「Chinese Poetry in Terms of Rhythm and Rhyme」, 上海外国语大学, https://en.shisu.edu.cn/resources/global-humanities-quarterly/chinese-poetry-in-terms-of-rhythm-and-rhyme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S08] Hongming Zhang 張洪明, 「漢語詩律起源:證自沈約詩案例研究」, 嶺南學報 Lingnan Journal of Chinese Studies, https://commons.ln.edu.hk/ljcs_new/vol5/iss1/6/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 [S11] 沈約, 『宋書』 「謝靈運傳論」,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wiki/宋書謝靈運傳論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 [S14] 嚴羽, 『滄浪詩話』 卷一 「詩辯」,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wiki/滄浪詩話/卷1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19] 『古詩十九首』 「行行重行行」, 『昭明文選』 卷29,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s/古詩十九首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46] 『詩經』 「周南·關雎」,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wiki/詩經/關雎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47] 屈原 전승, 『楚辭』 「離騷經」,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s/離騷經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52] 성기옥, 『한시의 맛: 율시의 대장과 요체 연구 I』, 책과이음, 2019, 5–30쪽.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S53] 성기옥, 『한시작법과 중국어 낭송』, 한국학술정보, 개인 소장본 Tutor Library, 2014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57] 維基百科編者, 「曹丕」,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曹丕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97] 楊鋒, 「中國傳統吟誦研究:從節奏、嗓音和呼吸角度」, 北京大學 LingLab 語言實驗室, 2012, https://www.linglab.cn/document/103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9 ↩10 ↩11
- [S98] 羅楨婷, 「論早期五言詩的節奏演變與美學示範」, 『嶺南學報』 Vol. 5, Iss. 1, 2016, https://commons.ln.edu.hk/ljcs_new/vol5/iss1/4/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9
- [S110] 王維, 「鹿柴」, 『御選唐詩(四庫全書本)』 卷二十六,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wiki/御選唐詩_(四庫全書本)/卷26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 [S111] 李白, 「月下獨酌(花間一壺酒)」, 『全唐詩』 卷182,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月下獨酌_(花間一壺酒)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112] 杜甫, 「登高」, 『全唐詩』 卷227,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登高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 [S113] 杜甫 원시·黃希 원본·黃鶴 보주, 『補註杜詩(四庫全書本)』 卷十九 「春望」,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t/補註杜詩_(四庫全書本)/卷19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 [S120] 曹丕, 「燕歌行」,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t/燕歌行_(曹丕)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 [S121] 陶淵明, 「飲酒二十首 其五」,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t/%E9%A5%AE%E9%85%92%EF%BC%88%E5%85%B6%E4%BA%94%EF%BC%89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