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약전을 읽는 눈: 이름과 시풍 너머의 작품
한시를 읽을 때 시인의 생몰 연대와 자(字)·호(號), 관직이나 봉작(封爵)에 따른 별칭을 알아 두는 일은 단순히 인물 정보를 암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전 문집과 시화(詩話)에서는 시인을 본명 대신 자나 호, 혹은 마지막으로 지낸 관직명(예: 왕유를 ‘왕우승’, 두보를 ‘두공부’라 부르는 방식)으로 일컫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호칭들의 갈래를 구별해야 원전과 주석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다 [S63, S65]. 또한 고대 인물의 생몰 연대는 사서의 기록이 소략하거나 음력 연호와 서력(그레고리력) 환산 기준이 달라 학설이 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불확실한 연대는 범위를 열어 두거나 이설(異說)을 함께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 [S54, S59, S63, S99].
시인의 시풍(詩風)을 한두 마디 별칭이나 형용사로 요약하는 비평 관습 역시 실제 작품을 읽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후대 비평가들이 붙인 ‘시선(詩仙)’이나 ‘시성(詩聖)’, ‘전원시인’ 같은 호칭에 갇히지 않고, 각 시인이 구체적인 시구 속에서 어떤 어휘와 호흡을 골랐는지를 대표작과 나란히 대조해 읽을 때 비로소 시인의 목소리가 살아난다 [S12, S14]. 한국 시인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는 다음 장인 한국의 한시에서 따로 다루고, 이 장에서는 중국 시사의 흐름을 이끈 주요 시인들을 시대별로 묶어 살핀다.
선진·한위의 시인: 초사와 건안 풍골의 형성
『시경』의 무명 시인들과 초사의 굴원·송옥
가장 이른 시가 집성인 『시경(詩經)』의 풍·아·송 305편은 대다수가 지은이의 이름을 전하지 않는다 [S13, S46]. 이름 없는 민간의 노래꾼들과 주나라 궁정의 악공·사대부들이 남긴 사언(四言) 시편들은 특정 개인의 전기 대신 공동체의 노동과 사랑, 제사와 정치를 증언한다 [S46].
이에 비해 자신의 이름과 비극적 생애를 작품 속 화자의 목소리와 겹쳐 놓으며 중국 문학사상 첫 번째 거대한 개인 시인으로 등장한 인물이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굴원(屈原, 기원전 4~3세기 활동, 정확한 생몰 연대는 학설이 갈림)이다 [S47, S54]. 이름은 평(平), 원(原)은 자(또는 이름)로 전하며, 초나라 왕족 출신으로 정계에서 배척당해 유배지를 떠돌다 생을 마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S54]. 그의 대표작으로 전하는 장편 서정시 「이소(離騷)」는 어조사 ‘혜(兮)’를 사이에 둔 긴 호흡 속에 향초(香草)와 미인의 상징을 촘촘히 배치하여 결백한 지조와 고뇌를 노래했고, 초나라 민간의 무속 악가를 다듬은 「구가(九歌)」는 신과 인간의 애틋한 만남과 이별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했다 [S47, S54]. 굴원을 읽을 때는 작품 속의 신화적 유람과 화려한 비유가 어떻게 시인의 고립된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핵심 실마리다(다만 『초사』 수록작의 편별 저자 귀속에는 후대 편집 과정이 얽혀 있어 전통적 귀속과 문헌학적 논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S47, S54].
송옥(宋玉, 전국시대 말기 활동, 생몰 미상)은 굴원의 뒤를 이은 초나라 문인으로, 대표 귀속작인 「구변(九辯)」을 통해 가을날 초목이 시들어 떨어지는 스산한 풍경과 뜻을 잃은 선비의 탄식을 결합함으로써 동아시아 시문학의 오랜 주제인 ‘비추(悲秋, 가을을 슬퍼함)’의 원형을 세웠다 [S47, S55].
건안 시단의 삼조: 조조·조비·조식
후한(後漢) 말기의 전란 속에서 악부 가요를 문인 시로 끌어올리고 오언·칠언 고시의 기틀을 다진 주역은 조조와 두 아들 조비·조식이다 [S56, S57, S58].
- 조조(曹操, 155–220): 자는 맹덕(孟德), 위(魏)나라의 기틀을 세운 정치가이자 시인이다 [S56]. 그는 한대 악부의 옛 제목(구제·舊題)을 빌려 전란의 참상과 통일의 포부를 읊었는데, 사언 악부인 「단가행(短歌行)」과 험준한 행군길을 그린 「고한행(苦寒行)」이 대표작이다 [S56]. 「단가행」은 아침 이슬처럼 짧은 인생을 탄식하면서도 어진 인재를 맞이하여 천하의 마음을 모으겠다는 웅혼한 기상을 사언의 묵직한 박자에 담아냈다 [S56].
- 조비(曹丕, 187–226): 자는 자환(子桓), 조조의 아들로 위 문제(文帝)에 올랐으며 문학비평문인 『전론(典論)』 「논문(論文)」을 남겼다 [S57]. 시에서는 무엇보다 일곱 글자 구절을 연속으로 배치한 「연가행(燕歌行)」 기일(其一)·기이(其二)가 중요하다 [S06, S57, S120].
秋風蕭瑟天氣涼,草木搖落露為霜。 — 曹丕, 「燕歌行」 其一 [S120]
“가을바람 쓸쓸하여 날씨가 서늘해지고, 초목은 흔들려 잎을 떨구며 이슬은 서리가 되네.” [S120] 억센 기상의 아버지 조조와 달리, 조비는 칠언 구절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압운을 통해 먼 타향의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섬세하고 애상적인 정조를 유려하게 그려 냈다 [S06, S57, S120].
- 조식(曹植, 192–232): 자는 자건(子建), 봉작과 시호를 합쳐 진사왕(陳思王)으로도 불린다 [S12, S58]. 젊은 시절의 연회와 이상을 노래한 「공연시(公讌詩)」·「백마편(白馬篇)」에서부터, 형 조비가 제위에 오른 뒤 정치적 감시와 좌절 속에서 지은 후기 시편과 「낙신부(洛神賦)」에 이르기까지 오언고시의 수사와 정서적 밀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S58]. 남조의 비평가 종영(鍾嶸)은 『시품(詩品)』 권상에서 조식을 오언시의 으뜸 자리에 놓으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S12].
骨氣奇高,詞采華茂。 — 鍾嶸, 『詩品』 卷上 [S12]
“뼈대와 기상이 기이할 만큼 높고, 말의 빛깔과 문채가 화려하고도 무성하다.” [S12] 강건한 기골(풍골)과 정교한 수사가 조화를 이룬 조식의 시는 당대 이백과 두보에 이르기까지 오언고시의 고전적 모범으로 읽혔다 [S12, S58].
위진남북조의 시인: 전원·산수·성조의 발견
도연명과 사령운: 전원의 평담함과 산수의 조탁
동진(東晉) 말기에서 남조 송(宋)나라로 넘어가는 시기에 자연을 시의 중심 공간으로 불러들인 두 시인이 도연명과 사령운이다 [S59, S60].
- 도연명(陶淵明, 약 365 또는 372–427): 이름은 잠(潛) 또는 연명이며, 자는 원량(元亮), 자신을 빗대어 쓴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서 유래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는 호와 사후의 시호인 정절선생(靖節先生)으로 불린다(출생 연도는 365년설과 372년설 등이 갈린다) [S59]. 지방의 작은 고을 원(팽택령)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직접 밭을 갈며 살아간 그는 「귀원전거 기일(歸園田居 其一)」과 「음주(飲酒)」 스무 수 연작 등을 통해 전원시(田園詩)의 전통을 세웠다 [S59, S121].
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 — 陶淵明, 「飲酒」 其五 [S121]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아득히 편안한 마음으로 남산을 바라보네.” [S121] 화려한 수식어를 덜어낸 일상어 속에 삶의 본질을 담는 그의 ‘평담(平淡)’한 시풍은 당대의 왕유·맹호연과 송대의 소식, 그리고 고려·조선의 수많은 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전범이 되었다 [S59, S72].
- 사령운(謝靈運, 385–433): 동진 명문가 출신으로 자는 영운(靈運, 아명은 객아·客兒)이며, 강락공(康樂公)이라는 작위를 이어받아 사강락(謝康樂)이라 불렸다 [S12, S60]. 도연명이 농촌의 소박한 삶 속으로 들어갔다면, 사령운은 영가(永嘉) 등지의 험준한 산과 계곡을 유람하며 눈과 귀로 포착한 산수의 변화를 정밀한 대우(對偶) 구절로 조각해 내어 남조 산수시(山水詩)를 열었다 [S12, S60]. 대표작으로 「등지상루(登池上樓)」와 조상의 덕을 기린 「술조덕시 이수 기일(述祖德詩二首·其一)」 등이 전한다 [S60].
포조와 심약: 칠언 악부의 약동과 성률론
- 포조(鮑照, 약 414–466): 자는 명원(明遠), 남조 송에서 참군(參軍) 벼슬을 지내 포참군(鮑參軍)이라 불렸다 [S62]. 문벌 귀족 사회에서 한미한 출신 때문에 뜻을 펴지 못한 울분을 「의행로난(擬行路難)」 열여덟 수와 「매화락(梅花落)」 같은 악부시에 쏟아냈다 [S06, S62]. 칠언 구절과 장단구를 과감하게 교차시키는 그의 힘찬 가락은 훗날 이백과 두보의 칠언가행(七言歌行)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었다 [S06, S62].
- 심약(沈約, 441–513): 자는 휴문(休文), 남조 송·제·양 세 왕조를 거친 학자이자 문인으로 『송서(宋書)』를 편찬했다 [S11, S61]. 「사령운전론」을 통해 사성(四聲)과 음운의 높낮이 대비를 시론으로 정립하여 영명체(永明體)를 이끌었으며, 실작에서는 벗과의 이별을 간결하고 정제된 오언구로 읊은 「별범안성시(別范安成詩)」 등을 남겼다 [S08, S11, S61].
당대의 시인: 성당의 정점과 중·만당의 변주
성당의 세 봉우리: 왕유·이백·두보
8세기 전반에서 중엽에 이르는 성당(盛唐) 시단은 각기 다른 예술적 지향을 지닌 왕유·이백·두보 세 시인을 통해 고체시와 근체시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넓혔다 [S63, S64, S65].
- 왕유(王維, 699 또는 701–761): 자는 마힐(摩詰, 불교 유마경의 유마힐에서 따온 이름), 만년에 상서우승(尙書右丞)을 지내 왕우승(王右丞)이라 불린다(출생 연도는 699년설과 701년설이 함께 전한다) [S63]. 시와 그림, 음악에 모두 능했던 그는 종남산(終南山)과 망천(輞川) 별장에 머물며 자연의 빛과 소리, 고요의 순간을 포착한 산수전원시를 남겼다 [S63, S110]. 대표작 「녹채(鹿柴)」와 「송별(送別)」, 「산거추명(山居秋暝)」을 읽을 때는 시인이 말을 아끼며 비워 둔 여백 속에서 어떻게 빛의 움직임과 산의 정적이 살아나는지를 음미하는 것이 좋다 [S63, S110].
空山不見人,但聞人語響。 — 王維, 「鹿柴」 [S110]
- 이백(李白, 701–762):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다 [S64]. 규범적인 율시보다 악부(樂府)와 고체시(古體詩), 그리고 오언·칠언 절구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S64, S111]. 대표작인 오언고시 「월하독작(月下獨酌)」과 악부 「장진주(將進酒)」는 대담한 과장과 환상적인 이미지, 거침없이 바뀌는 호흡을 통해 세속의 구속을 넘어서는 정신적 자유를 보여 준다 [S64, S111].
舉杯邀明月,對影成三人。 — 李白, 「月下獨酌」 [S111]
아울러 오언율시 「송우인(送友人)」처럼 근체시를 지을 때도 유려한 대우와 탄력 있는 성률(요체와 구요의 활용 등)로 막힘없는 기상을 살려 냈다 [S52, S64].
- 두보(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이며, 공부원외랑·좌습유 관직을 따라 두공부(杜工部)·두습유(杜拾遺)로도 불린다 [S65]. 젊은 시절의 기상을 담은 오언고시 「망악(望嶽)」에서 출발해, 안사의 난(755–763) 전후의 전쟁과 백성들의 참상을 고발한 「병거행(兵車行)」·「삼리(三吏)」·「삼별(三別)」 등 사실주의적 고시·악부를 남겼고, 동시에 오언율시 「춘망(春望)」과 칠언율시 「등고(登高)」를 통해 근체시 격률과 대우의 정밀함을 예술적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S65, S112, S113].
無邊落木蕭蕭下,不盡長江滾滾來。 — 杜甫, 「登高」 [S112]
두보를 읽을 때는 한 글자도 허투루 놓지 않는 치밀한 연자(鍊字, 글자를 단련함)와 대우의 균형 속에 시대를 아파하는 깊은 인간애(침울돈좌·沈鬱頓挫)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핵심이다 [S52, S65].
중당의 다변화: 한유·백거이·원진·이하
안사의 난 이후 중당(中唐) 시단에서는 성당의 전범을 넘어 시의 언어와 소재를 두 방향으로 확장한 시인들이 등장했다 [S66, S67, S68, S69].
- 한유(韓愈, 768–824): 자는 퇴지(退之), 창려선생(昌黎先生)으로 불린다 [S67]. 산문에서 육조 이래의 변려문(騈儷文)을 비판하고 고문(古文) 운동을 이끈 그는, 시에서도 매끄러운 상투어를 거부하고 산문의 어법과 낯설고 힘찬 글자들을 시에 끌어들였다 [S14, S67]. 칠언고시 「산석(山石)」과 유배길의 비장함을 읊은 칠언율시 「좌천지람관시질손상(左遷至藍關示侄孫湘)」이 대표작이며, 그의 시풍은 훗날 송시(宋詩) 형성에 큰 자극을 주었다 [S14, S67].
- 백거이(白居易, 772–846):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다 [S66]. 한유와 반대로 누구나 듣고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하고 유려한 시어를 추구했으며, “문장은 시대를 위해 지어야 하고 시가는 현실의 사건을 위해 지어야 한다”는 신악부(新樂府) 운동을 주도했다 [S07, S66]. 궁시(宮市) 제도의 수탈을 고발한 「매탄옹(賣炭翁)」과 당 현종·양귀비의 비극을 칠언 장편 서사시로 풀어낸 「장한가(長恨歌)」는 당대는 물론 신라·고려·일본에까지 널리 애송되었다 [S07, S66].
- 원진(元稹, 779–831): 자는 미지(微之)다 [S68]. 백거이와 평생 시를 주고받으며 신악부 운동을 함께 이끌어 ‘원백(元白)’이라 병칭되었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은 칠언율시 연작 「견비회 기일(遣悲懷 其一)」 등에서는 일상적인 생활 디테일로 깊은 슬픔을 전하는 서정의 힘을 보여 주었다 [S66, S68].
- 이하(李賀, 790–816): 자는 장길(長吉)이며, 스물일곱 짧은 생애 동안 남긴 독창적인 시풍 때문에 후대에 ‘장길체(長吉體)’ 또는 ‘시귀(詩鬼)’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S69]. 정사(正史)의 전기 기록이 간략하여 후대 설화적 일화와 실제 생애를 구분해 보아야 한다 [S69]. 그의 대표작인 칠언고시 「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黑雲壓城城欲摧,甲光向日金鱗開”)과 악기 소리를 신화적 환상으로 묘사한 「이빙공후인(李憑箜篌引)」은 검은 구름, 금빛 비늘, 자주색 피처럼 강렬한 색채 대비와 기괴한 상상력으로 중당 시의 또 다른 극단을 보여 준다 [S69].
만당의 서정과 감각: 두목·이상은
9세기 중·후반 만당(晩唐) 시단을 대표하는 두 시인은 흔히 ‘소이두(小李杜, 작은 이백과 두보)’라 불리는 두목과 이상은이다 [S70, S71].
- 두목(杜牧, 803–852): 자는 목지(牧之), 호는 번천거사(樊川居士)다 [S70]. 특히 칠언절구에서 맑고도 날카로운 기상을 발휘했는데, 가을 산길의 단풍을 노래한 「산행(山行)」과 역사의 우연성과 흥망을 한 조각 유물로 성찰한 영사시 「적벽(赤壁)」, 「박진회(泊秦淮)」가 대표작이다 [S70].
- 이상은(李商隱, 약 813–858): 자는 의산(義山), 호는 옥계생(玉谿生)·번남생(樊南生)이다 [S71]. 붕당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불우한 관료 생활을 보낸 그는 오언율시 「선(蟬, 매미)」처럼 사물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영물시(詠物詩), 칠언절구 「야우기북(夜雨寄北)」, 그리고 특정 제목 없이 ‘무제(無題)’라 붙인 연작시들을 남겼다 [S71]. 치밀한 대우와 고전 전고, 한 겹으로 해석되지 않는 모호하고도 아름다운 상징미를 구사하여 후대 송사(宋詞)와 서곤체(西崑體)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S71].
송대의 시인: 지성적 성찰과 일상의 발견
북송의 두 거장: 소식·황정견
- 소식(蘇軾, 1037–1101):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다 [S72]. 북송 문단의 중심에서 고문과 부(賦), 사(詞), 서화는 물론 한시에서도 호방하고 달관한 경지를 열었다 [S07, S72]. 아우 소철(蘇轍)과 화답한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 봄밤의 정취를 그린 「춘소(春宵)」, 여산의 풍경에서 인식의 한계를 짚어 낸 「제서림벽(題西林壁)」 등이 보여 주듯, 소식의 시는 어떤 제재와 마주하더라도 유쾌한 비유와 철학적 성찰로 시의 지평을 넓힌다 [S72, S122].
不識廬山真面目,只緣身在此山中。 — 蘇軾, 「題西林壁」 [S122]
- 황정견(黃庭堅, 1045–1105): 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도인(山谷道人)·부옹(涪翁)이다 [S73]. 소식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불리며 송시를 대표했고, 두보의 시법과 옛 문헌의 어휘를 치밀하게 단련하여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종조로 추앙받았다 [S14, S73]. 대표작으로 「등쾌각(登快閣)」·「기황기복(寄黃幾復)」·「청명(清明)」 등이 전하며, 평범한 어순과 평측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지적인 긴장을 만드는 작시법을 보여 준다 [S73].
남송의 두 목소리: 육유·양만리
- 육유(陸游, 1125–1210):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이다 [S74]. 평생 구천여 수의 시를 남긴 남송의 대표 시인으로, 금나라에 빼앗긴 북방 영토의 회복을 염원하는 비장한 우국시(임종 때 아들에게 남긴 절구 「시아·示兒」, 「추야장효출리문영량유감·秋夜將曉出籬門迎涼有感」 등)와 고향 산음(山陰) 농촌의 한가로운 생활을 그린 전원시를 함께 남겼다 [S74].
- 양만리(楊萬里, 1127–1206): 자는 정수(廷秀), 호는 성재(誠齋)다 [S75]. 처음에는 강서시파의 시법을 배웠으나, 훗날 책 속의 전고에 기대는 작법을 버리고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과 일상어를 결합한 ‘성재체(誠齋體)’를 창안했다 [S75]. 들국화의 자태를 재치 있게 읊은 칠언율시 「야국(野菊)」을 비롯해 「소지(小池)」·「치자농빙(稚子弄冰)」 등에서는 순간의 장면을 포착하는 경쾌한 기지가 돋보인다 [S75].
금·원·명·청의 시인: 비평과 시학의 다원화
금·원의 시인: 원호문·조병문·왕약허·살도랄·왕면·양유정
- 원호문(元好問, 1190–1257): 자는 유지(裕之), 호는 유산(遺山)이다 [S76]. 금(金)나라 말기 전란 속에서 북방의 침울하고 강건한 시풍을 집대성했으며, 금대 시인들의 작품을 모은 선집 『중주집(中州集)』을 편찬해 문헌의 인멸을 막았다 [S76]. 그의 「논시삼십수(論詩三十首)」는 한·위의 기골을 숭상하고 나약하거나 기교에 치우친 시풍을 비판한 금대 시론의 대표작이다 [S76, S123].
漢謠魏什久紛紜,正體無人與細論。 — 元好問, 「論詩三十首」 其一 [S123]
- 조병문(趙秉文, 1159–1232)과 왕약허(王若虛, 1174–1243): 조병문은 자가 주신(周臣), 만년의 호가 한한노인(閑閑老人)으로 『부수문집(滏水文集)』에 시문을 남겼으며 금대 문단을 이끌었다 [S77]. 왕약허는 자가 종지(從之), 호가 용부(慵夫)로 『호남유로집(滹南遺老集)』에 시문과 함께 강서시파의 형식주의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문학비평(『호남시화』)을 남겼다 [S78].
- 살도랄(薩都剌, 1272년 또는 1300년 출생설–1355): 자는 천석(天錫), 호는 직재(直齋)다(출생 연도에 이설이 있다) [S81]. 원(元)대 색목인(色目人) 가문 출신 시인으로, 북방 변새의 풍광과 강남의 서정을 아우른 『안문집(雁門集)』과 「연희곡(燕姬曲)」·「상경즉사(上京即事)」 등을 남겼다 [S81].
- 왕면(王冕, 1287년 또는 1310년 출생설–1359): 자는 원장(元章), 호는 자석산농(煮石山農)·회계외사(會稽外史) 등으로 전한다(출생 연도에 이설이 있다) [S80]. 원말의 화가이자 시인으로 묵매(墨梅) 그림에 직접 적어 넣은 제화시(題畫詩)인 「묵매(墨梅)」와 산촌의 쓸쓸한 정경을 그린 오언율시 「춘한(春寒)」 등을 남겼다 [S80].
- 양유정(楊維楨, 1296–1370): 자는 염부(廉夫), 호는 철애(鐵崖)다 [S79]. 원말명초 강남 시단에서 이하(李賀)의 시풍과 고악부를 결합한 기이하고 현란한 ‘철애체(鐵崖體)’를 이끌며 『철애고악부(鐵崖古樂府)』를 남겼다 [S79].
명·청의 시인: 고계·이몽양·원굉도·왕사정·심덕잠·원매
- 고계(高啟, 1336–1374 [FC09]): 자는 계적(季迪), 호는 청구자(靑丘子)다 [S82]. 원말명초 오중(吳中, 쑤저우) 시단을 대표한 인물로, 한·위 고시부터 당대 근체시와 악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체를 두루 능숙하게 구사했다 [S82]. 대표작으로 「등금릉우화대망대강(登金陵雨花臺望大江)」·「매화구수(梅花九首)」·「동방곡(洞房曲)」 등이 전한다 [S82].
- 이몽양(李夢陽, 1473–1530, 음력 연호로는 1472–1529 [FC10]): 자는 헌길(獻吉), 호는 공동자(空同子)다 [S83]. 명 중기 전칠자(前七子)의 선두에서 한·위의 고시와 성당의 근체시를 본보기로 삼는 복고론(復古論)을 이끌었으며, 고악부의 호흡을 살린 「하지수가(河之水歌)」와 「동작기(銅雀伎)」 등을 남겼다 [S49, S83].
- 원굉도(袁宏道, 1568–1610): 자는 중랑(中郎), 호는 석공(石公)이다 [S84]. 명말 공안파(公安派)의 중심 시인으로, 전후칠자의 복고주의가 빠진 모방의 폐단을 비판하고 시인 개인의 진솔한 감정과 개성(성령·性靈)을 자유롭게 표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S49, S84]. 사이트에서는 악부풍 단편인 「횡당도(橫塘渡)」 등을 읽을 수 있다.
- 왕사정(王士禛, 1634–1711): 자는 이상(貽上)·자진(子眞), 호는 완정(阮亭)·어양산인(漁洋山人)이다 [S85]. 청초 시단을 주도하며 왕유·맹호연 풍의 맑고 아득한 여운을 강조하는 신운설(神韻說)을 펼쳤고, 자선 시집인 『어양산인정화록(漁洋山人精華錄)』을 남겼다(작품 예: 「체천사고각첨조유회범문정공(醴泉寺高閣瞻眺有懷范文正公)」) [S49, S85].
- 심덕잠(沈德潛, 1673–1769): 자는 확사(確士), 호는 귀우(歸愚)다 [S86]. 청 건륭 연간에 성당 시의 단정한 법도와 유가적 시교를 중시하는 격조설(格調說)을 주창하고 『당시별재집(唐詩別裁集)』·『국조시별재집(國朝詩別裁集)』을 엮었으며, 산뜻한 오언율시인 「춘일촌행(春日村行)」 등을 남겼다 [S49, S86].
- 원매(袁枚, 1716–1797): 자는 자재(子才), 호는 수원(隨園)·간재(簡齋)다(중국 음력 연호 기준으로는 가경 2년인 1797년 사망으로 표기되며, 이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일부 영문 전기에서는 1798년 1월 3일 사망으로 적는다) [S50, S51, S99]. 젊은 나이에 관직에서 물러나 난징의 수원(隨園)에 머물며 『수원시화(隨園詩話)』를 저술했고, 격식과 도학에 구애받지 않는 성령설(性靈說)을 펼쳐 청대 시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작품 예: 「행역잡영(行役雜詠)」) [S50, S51].
시대별 주요 중국 시인 일람
| 시대 | 시인(시인 페이지 연결) | 생몰 연대 | 자(字)·호(號)·별칭 | 대표작 및 사이트 작품 연결 |
|---|---|---|---|---|
| 선진(초) | 굴원(屈原) | 기원전 4~3세기(학설 갈림) | 이름 평(平) | 「이소(離騷)」, 「구가(九歌)」 |
| 선진(초) | 송옥(宋玉) | 전국 말기(생몰 미상) | — | 「구변(九辯)」 |
| 한·위 | 조조(曹操) | 155–220 | 자 맹덕(孟德) | 「단가행(短歌行)」, 「고한행」 |
| 한·위 | 조비(曹丕) | 187–226 | 자 자환(子桓), 위 문제 | 「연가행(燕歌行)」 |
| 한·위 | 조식(曹植) | 192–232 | 자 자건(子建), 진사왕 | 「공연시(公讌詩)」, 「백마편」 |
| 동진 | 도연명(陶淵明) | 약 365/372–427 | 자 원량, 호 오류선생 | 「귀원전거 기일」, 「음주 기오」 |
| 남조 송 | 사령운(謝靈運) | 385–433 | 자 영운, 사강락 | 「술조덕시 이수 기일」, 「등지상루」 |
| 남조 송 | 포조(鮑照) | 약 414–466 | 자 명원, 포참군 | 「매화락(梅花落)」, 「의행로난」 |
| 남조 양 | 심약(沈約) | 441–513 | 자 휴문(休文) | 「별범안성시(別范安成詩)」 |
| 당(성당) | 왕유(王維) | 699/701–761 | 자 마힐, 왕우승 | 「녹채」, 「송별」, 「산중송별」 |
| 당(성당) | 이백(李白) | 701–762 | 자 태백, 호 청련거사 | 「월하독작」, 「송우인」 |
| 당(성당) | 두보(杜甫) | 712–770 | 자 자미, 호 소릉야로 | 「망악」, 「춘망」, 「등고」 |
| 당(중당) | 한유(韓愈) | 768–824 | 자 퇴지, 창려선생 | 「산석(山石)」 |
| 당(중당) | 백거이(白居易) | 772–846 | 자 낙천, 호 향산거사 | 「장한가」, 「매탄옹」 |
| 당(중당) | 원진(元稹) | 779–831 | 자 미지(微之) | 「견비회 기일(遣悲懷 其一)」 |
| 당(중당) | 이하(李賀) | 790–816 | 자 장길(長吉) | 「안문태수행」, 「이빙공후인」 |
| 당(만당) | 두목(杜牧) | 803–852 | 자 목지, 호 번천거사 | 「적벽」, 「산행」 |
| 당(만당) | 이상은(李商隱) | 약 813–858 | 자 의산, 호 옥계생 | 「선(蟬)」, 「야우기북」 |
| 북송 | 소식(蘇軾) | 1037–1101 | 자 자첨, 호 동파거사 | 「춘소(春宵)」, 「제서림벽」 |
| 북송 | 황정견(黃庭堅) | 1045–1105 | 자 노직, 호 산곡도인 | 「청명(清明)」, 「등쾌각」 |
| 남송 | 육유(陸游) | 1125–1210 | 자 무관, 호 방옹 | 「시아(示兒)」 |
| 남송 | 양만리(楊萬里) | 1127–1206 | 자 정수, 호 성재 | 「야국(野菊)」, 「소지」 |
| 금 | 원호문(元好問) | 1190–1257 | 자 유지, 호 유산 | 「논시삼십수」, 『중주집』 |
| 금 | 조병문(趙秉文) · 왕약허(王若虛) | 1159–1232 / 1174–1243 | 호 한한노인 / 호 용부 | 『부수문집』 / 『호남유로집』 |
| 원 | 살도랄(薩都剌) · 양유정(楊維楨) | 1272·1300설–1355 / 1296–1370 | 호 직재 / 호 철애 | 『안문집』 / 『철애고악부』 |
| 원 | 왕면(王冕) | 1287·1310설–1359 | 자 원장, 호 자석산농 | 「춘한(春寒)」, 「묵매」 |
| 명 | 고계(高啟) | 1336–1374 | 자 계적, 호 청구자 | 「동방곡(洞房曲)」, 「매화구수」 |
| 명 | 이몽양(李夢陽) | 1473–1530 | 자 헌길, 호 공동자 | 「하지수가」, 「동작기」 |
| 명 | 원굉도(袁宏道) | 1568–1610 | 자 중랑, 호 석공 | 「횡당도(橫塘渡)」 |
| 청 | 왕사정(王士禛) | 1634–1711 | 자 이상, 호 어양산인 | 「체천사고각첨조유회범문정공」 |
| 청 | 심덕잠(沈德潛) | 1673–1769 | 자 확사, 호 귀우 | 「춘일촌행(春日村行)」 |
| 청 | 원매(袁枚) | 1716–1797(서력 1798.1.3) | 자 자재, 호 수원 | 「행역잡영(行役雜詠)」, 『수원시화』 |
출처
- [S06] 孫景超, 「从矢口成韵到格式严苛——古典诗歌格律化进程」, 中国社会科学院, 2015, https://www.cass.cn/xueshuchengguo/wenzhexuebulishixuebu/201509/t20150921_2408475.shtml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07] Shanghai International Studies University Global Humanities Quarterly, 「Chinese Poetry in Terms of Rhythm and Rhyme」, 上海外国语大学, https://en.shisu.edu.cn/resources/global-humanities-quarterly/chinese-poetry-in-terms-of-rhythm-and-rhyme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08] Hongming Zhang 張洪明, 「漢語詩律起源:證自沈約詩案例研究」, 嶺南學報 Lingnan Journal of Chinese Studies, https://commons.ln.edu.hk/ljcs_new/vol5/iss1/6/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11] 沈約, 『宋書』 「謝靈運傳論」,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wiki/宋書謝靈運傳論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12] 鍾嶸, 『詩品』 卷上,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s/詩品/卷上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7 ↩8
- [S13] 劉勰, 『文心雕龍』 「明詩」,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s/文心雕龍/明詩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14] 嚴羽, 『滄浪詩話』 卷一 「詩辯」,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wiki/滄浪詩話/卷1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46] 『詩經』 「周南·關雎」,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wiki/詩經/關雎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47] 屈原 전승, 『楚辭』 「離騷經」,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s/離騷經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49] 李程, 「明诗总集编撰与清代诗学的演进」, 全國哲學社會科學工作辦公室, 2022, https://www.nopss.gov.cn/n1/2022/1108/c441752-32561474.html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50] 李鵬, 「18-19세기 동아시아 漢詩圈에서 性靈說의 수용 양상」, KCI, 동아시아문화연구, 2008,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314964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51] 楊玉如, 「袁枚詩研究:以社會關懷、品藝題畫及生命觀照詩作為主」, 國立政治大學學術集成, 2014, https://ah.lib.nccu.edu.tw/item?item_id=81894&locale=zh_TW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52] 성기옥, 『한시의 맛: 율시의 대장과 요체 연구 I』, 책과이음, 2019, 10–27쪽.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54] 維基百科編者, 「屈原」,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屈原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 [S55] 維基百科編者, 「宋玉」,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宋玉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56] 維基百科編者, 「曹操」,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曹操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57] 維基百科編者, 「曹丕」,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曹丕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58] 維基百科編者, 「曹植」,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曹植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59] 維基百科編者, 「陶渊明」,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陶渊明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 [S60] 維基百科編者, 「谢灵运」,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谢灵运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61] 維基百科編者, 「沈约」,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沈约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62] 維基百科編者, 「鮑照」,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鲍照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63] 維基百科編者, 「王维」,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王维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6
- [S64] 維基百科編者, 「李白」,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李白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 [S65] 維基百科編者, 「杜甫」,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杜甫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 [S66] 維基百科編者, 「白居易」,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白居易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5
- [S67] 維基百科編者, 「韩愈」,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韩愈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68] 維基百科編者, 「元稹」,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元稹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69] 維基百科編者, 「李贺」,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李贺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70] 維基百科編者, 「杜牧」,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杜牧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71] 維基百科編者, 「李商隐」,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李商隐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72] 維基百科編者, 「苏轼」,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苏轼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73] 維基百科編者, 「黄庭坚」,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黄庭坚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74] 維基百科編者, 「陆游」,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陆游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75] 維基百科編者, 「杨万里」,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杨万里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76] 維基百科編者, 「元好问」,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元好问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77] 維基百科編者, 「赵秉文」,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赵秉文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78] 維基百科編者, 「王若虚」,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王若虚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79] 維基百科編者, 「杨维桢」,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杨维桢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80] 維基百科編者, 「王冕」,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王冕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81] 維基百科編者, 「萨都剌」,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萨都剌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82] 維基百科編者, 「高啟」,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高启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83] 維基百科編者, 「李梦阳」,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李梦阳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84] 維基百科編者, 「袁宏道」,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袁宏道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85] 維基百科編者, 「王士禛」,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王士禛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86] 維基百科編者, 「沈德潜」, 中文維基百科, https://zh.wikipedia.org/wiki/沈德潜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99] Man-kuei Li, H. A. Giles 편찬 인물사전의 항목 전사, 「Eminent Chinese of the Ch'ing Period: Yüan Mei」, Wikisource, English, https://en.wikisource.org/wiki/Eminent_Chinese_of_the_Ch%27ing_Period/Y%C3%BCan_Mei (등급 C, 사실 참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110] 王維, 「鹿柴」, 『御選唐詩(四庫全書本)』 卷二十六,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wiki/御選唐詩_(四庫全書本)/卷26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111] 李白, 「月下獨酌(花間一壺酒)」, 『全唐詩』 卷182,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月下獨酌_(花間一壺酒)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112] 杜甫, 「登高」, 『全唐詩』 卷227,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登高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113] 杜甫 원시·仇兆鰲 주, 『補註杜詩(四庫全書本)』 卷十九 「春望」,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t/補註杜詩_(四庫全書本)/卷19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S120] 曹丕, 「燕歌行」,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t/燕歌行_(曹丕)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4
- [S121] 陶淵明, 「飲酒二十首 其五」,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t/%E9%A5%AE%E9%85%92%EF%BC%88%E5%85%B6%E4%BA%94%EF%BC%89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3
- [S122] 蘇軾, 「題西林壁」,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t/題西林壁_(蘇軾)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S123] 元好問, 「論詩三十首」, 『元好問集』 卷11, 維基文庫, https://zh.wikisource.org/zh-hant/元好問集/11 (등급 A, 고전 원전·CC BY-SA 4.0) 인용으로 돌아가기 ↩1 ↩2
- [FC09] 故宮博物院, 「高启」, https://www.dpm.org.cn/lemmas/242595.html (사실 대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
- [FC10] 王昌偉, 『李夢陽:南北分野與明代學術』 소개·서문, 厦門大學 民間歷史文獻研究中心, https://crlhd.xmu.edu.cn/info/1034/2990.htm (연구 자료, 사실 대조). 인용으로 돌아가기 ↩1